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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

 

어릴 적, 도깨비불을 본 적이 있다.

한밤중에 이유도 없이, 갑자기 열이 오르고 식은땀이 쏟아진 날이었다. 화들짝 놀라신 어머니가 의원 부르느라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깝다 하여 머슴 김 씨 등에 나를 업히고 동네 의원을 다급히 찾아가던 길이었다. 범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해가 지면 가급적 누구도 드나들지 말라는 새박이 고개를 구태여 넘어가던 그 길에, 나는 눈앞에서 푸르게 번쩍이는 불빛 두 개를 목도했다. 고열에 시달리느라 눈가가 흐릿해진 상태였지만, 온통 새카만 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두 개의 새파란 불빛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열에 달뜬 숨소리로 도깨비, 도깨비…하고 칭얼대는 나를 들춰 업고 달리던 김 씨가 헐떡이던 소리까지도.

“그래서, 귀신이라도 봤다는 건가?”

다분히 불만 섞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홍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꽤나 길게 자란 앞머리가 눈썹 근처까지 내려온 것이, 아미리가에서 본 양인들의 머리 모양과 흡사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러나 홍규는 내 속도 모른 채, 그저 내가 웃으니 또 뭔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기에 그리도 말을 배배 꼬아 돌리나? 돈 얘기에서 왜 갑자기 도깨비불 이야기가 나와?”

타박하듯 던진 홍규의 말에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차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개항 이후 재원 확보 없이 지출만 늘어나는 바람에 나날이 새로운 화폐를 찍어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개화파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청전이든 당백전이든 모두 폐지하는 것이 옳다, 차라리 청이든 일본이든 어디서든 돈을 빌리자. 옥균 선생을 비롯한 개화파의 중심들은 그런 의견을 숨김없이 왕에게 피력했다. 물론 묄렌도르프가 버티고 있는 청이 개화파의 의견을 일축할 것은 뻔한 일이었으니, 당연히 이야기는 일본에 차관을 받자는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다. 난관은 있었고, 조건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세 번이나 일본을 방문해 어찌어찌하여 결국 17만 원을 빌려온 옥균 선생의 지난 이야기를 홍규에게 해주던 중에, 불현듯 도깨비불 이야기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러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지?”

“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건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홍규는 어깨를 으쓱이며 픽 웃었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똑같이 어깨만 으쓱여주자 홍규는 고개를 슬쩍 젓고는 책상에 풀썩 엎드렸다. 꽤 자란 머리카락이 같이 풀썩 날렸다.

“혁명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아. 원표 자네가 옥균 선생 이야기까지 들먹이면서 주지시켜주지 않아도 말이야.”

“그런 뜻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었어.”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건….”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었기에, 나는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침묵은 긍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나도 알고 그도 알기에, 홍규는 엎드린 채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 눈에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나는 끝까지 내 이상을 지키고 싶어. 혁명은 그 무엇보다 이상에 가까워야 하니까. 혁명과 이상, 둘의 거리가 멀어진다면 그건 더 이상 혁명이 아니지.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반란에 붙이는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네도 알잖아.”

“…혁명에 실패하면 어차피 모두 다 핑계밖에 더 되겠어?”

내 대꾸에 발끈해서 고개를 쳐든 홍규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몰려 금세 붉어진 입술로 한참을 웅얼거리던 그는 내뱉듯이 너무도 쉽게 죽음을 입에 올렸다.

“혁명의 성공, 아니면 죽음. 어차피 그것뿐이야.”

“…….”

이번에는 정말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혁명이 실패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차피 불명예스러운 죽음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저토록이나 쉽게, 가볍게, 그러나 동시에 무겁고 다부지게 죽음을 입에 올리는 홍규에게 나는 매일 밤 실패하는 악몽을 꾼다고 고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신에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홍규의 앞에 놓아두었다. 홍규는 설명하길 바라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에겐 이 길밖에 없어, 홍규.”

그렇게 말하고 나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더 꺼내어 껍질을 벗기고 혀에 올려 녹여 먹었다. 혀끝이 마비될 것만 같은 달디 단 감각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규가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짧게 지나는 소음, 이어 짧게 침을 삼키는 소리. 우리는 말없이, 눈을 감은 채 저 서역의 디저트를 음미했다. 혁명을 꿈꾸는 소년들이 맛볼 수 있는 가장 찰나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달콤함까지 목 뒤로 넘겨버린 후에야, 나는 겨우 눈을 뜨고 홍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성공할 거야.”

의미도 근거도 없는 내 확신어린 말투에 홍규는 그저 웃었다. 평소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그래서 홍규는 내가 그 뒤에 소리도 없이 입 속으로 뇌까리며 덧붙인 말은 미처 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성공할 거야, 혁명은. 언젠가, 우리가 모두 죽고 난 뒤에.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서도에게도 해준 적이 있다. 서도와의 첫 만남, 글쎄. 그건 사실 처음부터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왕비전의 시녀를 꾀어야 한다며 옥균 선생이 내게 지령 아닌 지령을 내렸을 때부터 나는 개화파의 부외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옥균 선생이라든지, 영익 선생이라든지-물론 나중에 척을 지고야 말았다지만-영효 선생이나, 나와 나이 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신사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나라에 대한 큰 꿈을 품은 채 자기들끼리 꿈을 공유해 온 사람들의 곁에서 그저 뜻만 가지고 버티는 일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 꿈에 동의하여 혁명을 향한 징검다리로써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홍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난 개혁의 꿈을 접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꿈이 그만큼 연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만큼 단단했기에. 그러나 너무 많은 고민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곁에 있었던 홍규는 열정과 열정을 닮은 채찍질로 나를 몰아세웠다. 간혹 나는 홍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상한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나 역시 저리도 혁명에 매달렸을까, 하고.

그 대답은 언제나 아니라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홍규를 가장 가까이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정확한 반대편에서 비판할 수 있는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홍규처럼 눈 먼 말이 결승점에 치닫듯이 그저 혁명의 성공만을 향해 달리는 것에 대한 의문을 일찌감치 품고 고구해왔다. 옥균 선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아미리가 보빙사 방문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알았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개혁이 반드시 성공할 수만은 없으리란 걸. 세상이 바라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우리는 무언가를 앞질러 나가고자 이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이야기-개혁에 대한 주제로 홍규와 다퉜던 일-를 서도에게 했을 때, 서도는 잠깐 말을 잊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를 위해 왕비의 밀서를 빼돌려 달라는 부탁을 한 사내가, 무거운 고뇌를 진 표정을 하고는 혁명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서도 입장에서는 무리도 아니었을 테지. 그러나 서도는 나를 힐난하는 대신 말없이 내게 책을 건넸다. 익숙한 붉은 장정의 책. 나는 그 책을 받아든 채 잠시 물끄러미 그 표지를 바라보았다.

“‘레옹의 죽음’… 법국의 혁명을,”

“애정행각으로 탈색시킨 잡서라고?”

서도가 웃으며 되받아쳤을 때, 나는 홍규를 생각했다. 그리고 서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지금 네게 필요한 책 같아.”

“어떤 의미에서?”

“네가 왜 혁명을 하고 싶은지, 너에게 혁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고? 내가 책과 서도를 번갈아 바라보자, 서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서도의 목에, 내가 선물한 스카프가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내가 그 사실에 대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도가 하얀 손을 내가 든 책 위에 얹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엔 희미하지만 선명한 푸른 인광이 일렁였다.

“혁명이 뭐라고 했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위해…”

“그래, 목숨을 던지는 것. 원표, 여전히 넌 그럴 수 있겠어?”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책 표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시대가 달라도, 여전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분하지만… 원표, 나는 레옹이 되고 싶어.”

서도의 말에 나는 무심코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서도는 살풋이 눈가를 접어 웃어보였다.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다부지게 속삭이는 그 말투에는 익숙한 힘이 실려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그 말투, 나는 이어지는 서도의 말을 들으며 내가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눈썹을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혁명의 거센 폭풍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랑마저도 혁명이 되고, 혁명조차 사랑해버린, 레옹처럼 사랑하고, 혁명하고 싶어.”

그 말에 담긴 내용도, 혁명을 향한 마음도 조금은 달랐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그런 식으로 눈빛을 불태우는 이를 알고 있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같은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 다른 듯 닮은 듯, 똑같이 두 눈에서 도깨비불처럼 서늘하게 푸른 안광이 빛나는 사람들. 나는 그 순간 서도에게서 홍규를 겹쳐보았고, 그런 자신에게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버리고 말았다.

 

 ̄…사흘간의 기억이…ㅇ원토ㄹ…

 ̄정변 진압에 공을 세운 자들의 명단이야.

 ̄원표, 여기 네 이름도 있다.

 ̄멀리서 몇 번 본 적이 있어.

 ̄이런 때 약속을 못 지키는 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지?

 ̄서도, 이쪽은…

 ̄홍규.

 ̄홍규….

 

머릿속에서 나는 도깨비불을 보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활활 타오르며 나를 잠식한 고열 때문에 숨쉬기가 쉽지 않았다. 이 불길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더듬거리며 사방을 휘젓던 손이 뜨끈하게 타오르는 아랫배에 가 닿았다. 뜨겁고, 붉은 것이 콸콸 쏟아져 나오며 내 손을 적셨다. 여기구나. 내 불꽃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곳이 여기였구나. 나는 내 불꽃만큼이나 새빨간 종이를 붙잡아 그 불길을 틀어막았다. 끔찍한 통증이 불길보다 더 뜨겁게 내 아랫배를 버혀냈다. 그 아픔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을 때, 눈앞에서 새파란 도깨비불 두 개가 나란히 뜬 채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꽃의 가장 안쪽은 손을 넣어도 타들어갈 일이 없을 것처럼 마냥 깨끗하기만 한 순백으로, 그러나 겉불꽃은 백골이 타올라 내는 인광처럼 푸르디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그 도깨비불들은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다 내 주위를 두어 바퀴 빙빙 맴돌고는 이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날아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배를 지져대고 있는 이 시뻘건 불길과는 다른, 그들의 그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한 새파란 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내가 닿을 수 없었던, 같은 꿈을 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언제나 기꺼이 자신의 이상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남자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여자의 영혼을 닮은 그 새파란 도깨비불이 멀리 멀리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시뻘건 불길을 닮은 울음을 토해냈다. 서도, 홍규, 홍규, 서도, 그리고,

 

그리고….

 

“으아아ㅏㅏㅏㅏㅏ아악- ---- ---!”

 

탕, 탕, 타당- 탕, 탕!

빗발치는 총성은 궤적보다 빨랐고, 나를 찢는 탄환보다 더 날카로웠다. 차가운 바닥에 고꾸라지며 나는 그제야 웃었다. 손발이 제멋대로 널브러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폐가 더 이상은 어렵다는 듯 쌕쌕대며 버거워하고, 입가에선 피거품이 이는 그 순간에도 나는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그 순간에야말로 내게서, 그토록 바라던 새파랗고 차가운 빛이 뛰쳐나가 자유롭게 춤추듯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사방을 뒤덮은 불길과 내 몸을 뒤덮은 통증의 불꽃 속에서 어린 시절 그때처럼 나를 태우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나는 나를 떠나 그들을 쫓아가는 도깨비불을 보았다. 내가 바라고, 내가 동경하며, 내가 사랑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불태우던 그 도깨비불을. 그리고 이제 그들과 함께 하게 될 나의 도깨비불을.

Sœur Mo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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